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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말살 정책

그리스도의편지 2019. 11. 21. 14:21

사탄의 최후 음모

유대인 말살 정책

 

 

         유대인 말살 정책을 지휘하던 히틀러는 더욱 힘을 내기 시작하였다. 때는 1940-1941년 어간에 발생한 일이다. 왜 히틀러는 유대인의 씨를 말리려 했을까?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에서 비롯하였다. 그의 유대인 말살 계획을 꾸몄는데, 단계적으로 실현하였다. 결과는 하나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히틀러는 반유대주의 계획을 세웠다. 그 시기는 1933. 2부터다. 유대인의 상점 약탈, 유대인을 폭행, 불매운동 등이 그렇다.

다음은 뉘른베르크 법(1935) 제정으로 인종차별정책이다. 이때 유대인을 살상하는 법안이 채택하고 실현하게 되었다. 이후에 유대인의 대량살상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의 나치당은 반유대주의를 확산시켰다. 독일만이 아닌 전 세계로 확산이다. 이때 자신의 출생 성분을 신분증에 기재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름과 성 사이에 남자는 이스라엘, 여자는 사라를 써넣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반유대인과 유대인을 나누었다. 장차 유대인을 모아 학살하려는 계책이었다. 이후에 모든 유대인의 신분증을 회수하였는데 사람이 아닌 짐승이 되었다는 신호가 된 것이다. 즉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만행이다. 불길한 상황을 눈치 챈 유대인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그런데 폴란드는 유대인들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직면하였고,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때 피난길에 오른 유대인의 수는 약 15천 명 정도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유대인에게 불리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17세의 유대인 청소년이 파리 주재의 참사관을 살해를 했던 것이다. 그 여파로 반유대주의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일어났고, 이 사건이 유대인 학살의 명분이 되고, 발생되기에 이르렀다. 유대인을 살상할 기회를 보던 사람들은 이때가 적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938. 11.9 저녁 나치당원과 돌격대들은 유대인 사냥에 나섰다. 그날 저녁에 예상대로 유대인 시설은 파괴되고 불태워졌다.

그리고 1939.9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2차 세계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나면서 유대인들은 길을 잃어버렸다. 먹고 살 길이 막히고 말았는데, 직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나치독일에게 돈을 주면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래서 50만 명 가운데 약30만 명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게토라는 유대인 지역을 만들어 그곳에 거주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곳의 환경은 열악하여 죽어가는 유대인들이 늘어났다. 이들의 삶은 비참할 지경이었다. 인권이 유린당하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밤 8시 이후에는 통제하였고, 대중교통 사용을 금지시켰고, 심지어 전화기도 사용 못하게 막았다. 공중전화 박스에는 유대인 사용금지, 가게에는 개와 유대인은 출입금지라는 종이를 써 붙였다. 유대인은 배급 쌀도 받지 못했다. 6세 이상의 모든 유대인은 가슴에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JUDE’라는 다윗의 별 문양의 명찰을 붙이게 했다.

나치의 수용소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굶주림과 과도한 노동 그리고 질병으로 죽어갔다. 노동의 강도는 살인 적었다. 노동에 동원 되었던 사람의 수명이 3개월이라고 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제는 돈을 주어도 나치지역을 나갈 수 없게 고립을 시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1941년은 유대인을 감금하는 목적에서 학살로 변한 시기였다. 독일은 자국의 우수성을 드러내려고 미개한 민족을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가졌다. 그 미개한 민족은 유대인들로 설정했다. 즉 비 독일계는 소탕한다는 것이다. 이때가 대량살상이 최고치에 이르렀다고 말들을 한다. 그때가 1941. 6.22로 나치당이 러시아를 침략한 후에 일이었다. 나치의 작전은 유대 적색혁명 총본산을 섬멸하기 위한 소련에서 거주하고 있는 약 500만 명의 유대인의 학살이다. 1941.3.3.에 유대 볼셰비키 지식인들을 소탕을 위하여 그의 친위대를 최전방에 배치할 것을 명령했다. 소련 영토에 살던 유대인 250명은 극적으로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90만 명의 유대인은 살해되고 말았다. 사살된 유대인들은 구덩이 옆에서 죽임을 당했는데, 파놓은 웅덩이가 이들의 무덤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독일나치당에게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몰랐다. 단지 이들이 유대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더 잔인한 학살의 현장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인데, 일명 목욕탕이라고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유대인 학살을 위해서 매일 6천명을 선택하여 수용소로 가는 열차에 태웠다. 이들은 목욕하러 가는 줄로 알았을 것이다. 독일은 유대인을 목욕탕에 들인 후에 가스를 분사했다. 이들이 잘못해서가 아닌 유대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치당원들에게 희생당한 유대인의 총합은 약 9백만 명이 이른다고 한다. 자세하게는 1939-1945까지 희생당한 유대인의 수는 약 1100만 명이 훨씬 웃도는 수치라고 한다.

국가

희생자 수

국가

희생자 수

폴란드

3백만

독일

18

러시아

120

리투아니아

13

루마니아

35

네델란드

10

헝가리

30

프랑스

9

체코

27

그리스

6

이외에 유고 6만 명, 오스트리아 6만 명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소탕할 집단이 있었는데 공산주의자와 공산체계를 세우려는 유대인, 그리고 슬러브민족이었다. 이들 나치가 저지른 만행은 유럽 전 지역에서 발생했다. 그 중에 가장 피해가 컸던 민족이 유대인들 이었다.

당시 유럽의 국가들은 독일의 나치당의 무자비한 행위에도 침묵 밖에 할 수 없었다. 독일 나치당의 기세에 눌렸던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교황이 있는 시설 앞에서도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날랐다. 이때 교황청은 477명을 구출했지만 미미했다. 앞서 말한 목욕탕 가스실처럼 독일의 나치당은 이들을 공장으로 데려간다고 하고 강제수용소에 가두었다. 아마도 이들 유대인들은 목욕탕에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고, 공장에서 일하러 가는 줄 알고 그들의 차에 올랐을 것이다. 이들 나치당원들은 목욕탕에 들여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혀 아프지 않단다. , 숨 한번 힘껏 들이수렴, 허파가 튼튼해진단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지, 정말 좋은 소독제란다잡혀간 유대인들은 이들의 거짓말을 믿었다.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총리대신이던 하만이 왕비 에스더의 아저씨 모르드개와 대립 끝에 3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전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만의 계획을 빗나가게 하였고 모르드개를 달 장대에 자신이 올라갈 운명에 놓였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장대에 올라가 심판을 받았다. 자칫 잘못했다면 유대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도 자기 백성의 편에서 일하였고,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을 변하지 않았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122-3).

(독일계 유대인 1929.6월 12일-1945년 3월) 히틀러 나치의 피해자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

참고서적>홍익희,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행성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