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6. 15:34ㆍ카테고리 없음
즉석 기독교 이론
빠르게 써내려간 기독교
기독교 교리는 참 쉽다.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학문의 한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본문 한 구절을 두고도 사람마다 생각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좀 더 색다른 연구물을 거듭 낸다. 같은 주제를 두고 많은 인원이 그곳에 집중한다. 따라서 같은 주제의 책이 서점에서도 넘친다. 어떤 책을 보면 마치 하나님의 생각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글을 쓴다.
복음서는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공공의 사역을 하였다. 그분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세례 요한의 의식을 따라 그에게 물세례를 받았다. 당시에 물세례는 일반적인 일일 것이다. 왜냐면 사람들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기 위해 그를 찾았다. 세례요한은 에세네파의 일원으로 그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 증거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있는 걸로 예단 할 수 있다. 이들 에세네파를 쿰란공동체라고도 불렀다. 이들은 공동체생활을 하며 동굴에 모여 금욕생활을 했다. 또 종말에 대한 믿음이 가지고 사회와 거리를 두며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다.
성경에 쓰인 기사대로면 세례요한의 모습은 광인 그 자체 일 것이다. 앞선 글대로라면 그는 홀로 광인의 삶을 살지 않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한 분파를 이루어 절제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수행자들은 때로 득도를 위해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는 어떤 구도자는 방 안 들어가서 수년씩 가부좌를 트는 경우가 있다. 세례요한의 분파들 역시 그 무리들이 수행할 처소를 구하여 약대 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지켰을 것이다.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물세례는 보편적인 행위로 예수역시 그 대열에 끼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세례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는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40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사탄을 보내어 예수를 시험하였다. 사탄 역시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시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험은 하나님이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바울이 생각하는 시험은 자신의 정욕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적고 있다. 시험은 자신에게서 시작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를 살피는 차원에서도 시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받은 시험은 아주 세속적인 시험들인데, 요약하면 사탄에게 경배하면 세상만국을 주겠다는 유혹이다. 그러나 예수는 사탄의 제안에 즉시 거절하였고, 모세가 받은 율법을 지켰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을 향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달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구약)전달한 사람이다. 그분의 사역은 모세의 율법을 전하였는데, 그 방식이 예사롭지가 않고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모세의 율법을 예수께서는 소외되고 약자들 편에서 혁명적으로 해석하여 실천하였다. 바리새인들 즉 당시의 주류들은 예수의 논리에 핍박을 가하였다. 그가 전하는 모세의 율법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주류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절시키는 이단아로 생각하였는데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반박하는 글을 썼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러 온 분이 아닌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예수의 행위가 율법을 파괴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예수는 새로운 파벌을 만들려는 목적은 있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인 약자들의 편에서 율법을 재해석 했던 것이다. 때로는 극단적인 생각을 돌출했던 것이 사회적으로 큰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는 율법을 위해서가 아닌 율법을 파괴하는 자로 보였다.
예수의 행적을 확장 시켜 기독교의 발판이 되게 한 사람이 바울이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부인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예수의 행적을 조사하고 그에 대해서 연구물을 게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신약전서의 13권으로 된 바울의 편지들이다. 이 편지는 바울이 선교하면서 세운 교회들에게 보낸 글로 하나님 때문에 오는 세상의 핍박을 이기라는 내용이다.
예수는 약 3년 반 동안을 팔레스타인 지역에 하늘의 복된 소식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인류의 대표자로 죄인이 되었다. 그의 죄명은 신성모독 죄로 자신을 구약에서 예견한 오실 메시야라고 했던 점이다. 그리고 세상의 법정에서 세상의 판단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가 생각하는 죽음은 빌라도의 사형 판결을 받고 죽었을 뿐이었다. 이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였고,
마침내 바울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이방인들에게 전하였다. 이후에 그분의 복음을 전달할 전략적 기지가 초대교회로 나타난다. 바울은 예수의 행적을 모아 기독교로 가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그의 일관적인 입장은 복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시 부활하는 것을 말한다. 육신이 사는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닌 영원히 살집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강조했다. 그렇게 영적인 해석을 하였는데, 육신적인 사람은 옛사람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그 생명은 새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교회가 지나치게 강조하는 말씀이 십자가가 된다. 즉 십자가에서 원초적인 옛 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을 입는 일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말씀을 한다. 구약의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죄를 벗기 위해서 수많은 가축을 대신 희생했다. 즉 자신이 끌고 온 죄 없는 가축에게 자신의 죄를 안수하고 죽이는 의식이다. 이것을 희생제사라고 한다. 내가 죽을 자리에 우리 집에서 기른 가축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 제사는 구약이 끝나는 시점까지 행했다. 끝내 구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마친 역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들고 온 이론이 십자가 사상이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었다는 논리는 실패한 이론을 인식시킨다. 바울을 통해서 새롭게 작성된 논리다. 바울은 동물재물이 아닌 사람의 재물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함을 이끌어 냈다.
사람의 재물이 될 사람이 예수그리스도가 된다. 그는 사람의 씨로 태어나지 않고 성령의 씨로 된 사람이면서 성신이다. 사람의 씨로는 죄를 양산 할뿐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다는 논리다. 따라서 죄 없는 성령의 씨로 된 사람이 희생돼야 했다. 그분이 예수그리스도가 된다. 예수님은 당시 새로운 혁신가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주류의 삶이 아닌 비주류의 고달픈 삶을 온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율법이 있었을 것이다. 율법을 혁신 시킬 필요성을 가진 분으로 사료된다.
예수는 자신을 위한 사상을 만들어 펼치지 않았다. 약자의 편에서 불합리한 율법을 고쳐 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율법을 폐하러 온 사람이 아닌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예수는 힘없는 약자들의 리더였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교리는 누가 만들어 냈는가? 예수 이후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연구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심인물은 바울이 될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의 그룹에 있었던 사람이 아닌 성령으로 된 제자이다. 예수를 직접 목격한 바가 없는 사람이다.
그의 말은 대충 이렇다. 율법에서는 유대인만이 하나님 선민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일부의 특권이 세상으로 이동된 점을 강조한다. 즉 바울은 편협한 유대인들의 사상을 확대하여 세상으로 연결시켰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입기 위해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다. 예수의 제자들이 했던 말대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야 되는 것이 기독교인이다(요11:16). 기독교는 철저히 자신의 생각을 자기 십자가에서 죽이고 다시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태어남을 원칙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