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 사건

2020. 8. 9. 14:21카테고리 없음

홍수

좋은 것도 넘치면 벌이 된다.

 

 

 물의 중요성은 성경 곳곳에 나와 있는데, 사람은 양식을 먹지 못해도 여러 날을 살 수 있지만 물 없이는 살자 아무도 없다. 물은 인간의 생명을 이어가는데 필수요소이기에 그래서 물은 고대근동지역에 생명줄과 같았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우물을 파는 재능을 주셨는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우물을 찾는 재능을 주셔서 평생을 우물 파는 일을 하게 하였다. 그가 땅을 파면 그곳에는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때 이삭만 우물을 파지 않았다. 창세기 26:12-20절을 보면 이삭이 판 우물을 블레셋사람들이 빼앗았다고 나왔다. 이삭이 우물을 다시 파면 또 빼앗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블레셋도 물을 찾고 다녔다. 함께 우물을 팠지만 블레셋은 실패하고 이삭은 성공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만 우물을 허락했다. 또 이삭이 농사하면 그 해에 백배나 수확하게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었다(26: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이 그가 사는 동안 붙어 다녔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좋은 것도 넘치면 재앙으로 변하고, 생명수와 같은 물이라도 그렇다. 무엇이든 넘치면 흉기로 돌변한다. 권력도 그렇다. 한곳에 집중되면 썩기 쉽다. 성경은 균형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과 나누라고 했다. 나눔으로 균형을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져야 하고 더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욕심은 죽어야 마친다고들 한다. 이렇듯 욕심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비극을 겪고 있다. 적당할 때 멈췄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홍수는 물이라도 좋은 현상이 아니다.

물은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다. 비를 통해서 농사도 짓고, 소중한 식수로 사용한다. 또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 올해는 비가 참 많이 내린다. 또 꾸준히 내린다. 여기저기서 물난리를 겪고 있다. 도로는 강이 되고, 산비탈은 무너져 가옥을 덮치고 오랫동안 굳게 닫힌 수문들이 올라갔다. 금일 오후7시를 기해서 많은 비가 예상된다는 재난문자가 왔다. 오랫동안 내린 비 때문에 내부는 습기로 눅눅하여 마치 물속 같다.

홍수에 대한 기사는 성경에도 있는데 인류를 새로 교체한 사건이다. 마치 광야의 1세대가 사막에서 엎드려진 사건과 같다. 인류의 계속된 죄악으로 하나님은 크게 후회를 하였고 인류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였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후회한 사건이 있는데 사울을 왕 삼은 일이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삼상 15:11).” 하나님이 후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징조다. 비가 계속 내린다면 이것도 불길한 징조라 하겠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늘의 수문과 땅의 수문을 열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일을 위해서 당대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노아를 택하였는데 그에게 방주를 짓는 일을 하게 했다. 그 이름이 구원의 방주이다. 구원의 방주 짓는 일은 구원을 받을 당사자의 몫이다.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노아가 사람을 사서 방주 짓는 일을 했다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주는 하나님은 노아의 손으로 만들길 명령했다. 개인의 구원은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일이며 오롯이 자신이 할 몫이다. 구원 받는 일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식솔들은 노아 때문에 구원 받은 행운의 케이스가 된다. 아마도 그의 가족들은 노아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가족 중에 구원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를 통해서 가족의 구원이 시작된다. 무엇보다 가족의 구원은 가족이 하는 것이 쉽다. 예수의 12제자들을 보더라도 가족이 많았다.

노아의 배 짓는 작업은 제일 높은 산꼭대기에서 하였다. 사람들은 노아의 배를 짓는 모습을 보며 정신 나간 바보라고 놀렸다. 그러나 그는 놀리거나 말거나 묵묵히 하나님의 명령대로 배 짓는 일을 계속하였다. 믿음이 있는 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묵묵히 그분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이기에 가능하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구원의 확신이 있기에 얼마든지 노아가 될 수 있다. 내안에 내가 많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사사건건 반응을 보이며 다툰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면 세상을 더 불쌍히 여기게 된다. 세상의 언어로 하면 자아존중감이 높아진 것이다.

노아는 욥과 더불어 하나님께 인정받은 당대 믿음의 사람이었다. 또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은 그분의 은혜와 직결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배가 완성되던 날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자기 식구와 각종 동물 두 쌍과 일곱 쌍을 방주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방주 문을 닫았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비를 내리게 했고, 노아가 지은 방주는 물에 떠올랐다. 노아의 배를 짓는 모습을 보며 바보라 했던 사람들은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세상도 함께 물에 잠겨버렸다. 물의 수위를 보니 가장 높은 봉우리위로 7m위까지 덮였다고 기록하는데, 이 말씀은 모든 생명체는 살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고 완결되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켜 물을 제거하고 이제 새로운 구성원들과 새 시작을 알린다. 홍수사건은 최초로 하나님께서 하신 인류 정화작업이었고, 하나님의 인류 새 판짜기였다. 회심한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새 판짜기의 구성원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방법으로 된 것이 아니면 새롭게 다시 그 과정을 전개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분은 언제든지 하던 일을 엎어 버리고 다시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며 생명이다. 비를 통해서 농사도 짓고, 소중한 식수로 사용한다. 또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좋은 것도 넘치면 재앙으로 변한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져야 하고 더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욕심은 죽어야 마친다고들 한다. 이렇듯 욕심 때문에 비극을 겪는 사람이 참 많다. 뒤늦게 후회한다.

물의 중요성은 성경 곳곳에 나와 있는데, 사람은 양식을 먹지 못해도 여러 날을 살 수 있지만 물은 그렇지 못하여 단 몇 칠만 마시지 못하면 살자가 아무도 없다. 물은 인간의 생명을 이어가는데 필수요소이기에 그래서 물은 고대근동지역에 생명줄과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우물을 찾는 재능을 주셔서 평생을 우물 파는 일을 하게 하였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하여 생명 살리는 일을 하게 했다. 그가 땅을 파면 그곳에는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때 이삭만 우물을 파지 않았다. 블레셋도 물을 찾고 다녔다. 함께 우물을 팠지만 블레셋은 실패하고 이삭은 성공했다. 그래서 블레셋은 이삭이 우물을 파놓으면 엿보고 있다가 그 우물을 빼앗았다. 또 다시 우물을 파면 블레셋이 와서 빼앗았다. 하나님은 이삭에게만 우물을 허락했다. 또 이삭이 농사하면 그 해에 백배나 수확하게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었다(26: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이 그가 사는 동안 항상 붙어 다녔다. 이삭이 판 우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샘물이었다.

 하나님의 심판 도구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집합체였다. 비는 심판의 징조라면 그 빗물이 모여서 심판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가랑비도 오래 맞으면 옷이 젖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의 경고를 경고로 알지 못하여 이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불순종의 연속이었고, 하나님의 복으로 채울 공간에 대신 죄와 사망으로 가득 채웠다. 그 결과 받지 않아도 될 고통과 불편함을 불러 들였다. 요즘 비로 인한 피해는 하나님의 징계라고 여겨진다. 하나님이 건설한 자연을 잘 돌보지 못한 대가를 받고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매일 들어도 부족하지 않는 말이 자연보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