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다려라

2019. 11. 10. 15:28희망

오늘도 기다려라

그만 할 때까지 기다려라.

 

 

믿음은 기다림부터 시작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반드시 내가 응답한다. 오늘도 그분께 부르짖는다. 그러나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언제까지 불러야 하는지 기약도 없다. 믿음이 아슬아슬하다. 갈등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을 부인하기도 쉽지 않고, 이제 그 기도에 응답하면 안 될까요? 하나님의 반응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반드시 내가 응답할 테니 기도하면서 기다리라고만 한다.

 

하박국1:2절의 말씀이 나를 더 혼미케 한다. 그것은 대상이 듣지 않는 것이다. 귀를 막고 있다면 고립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마음에 탄식이 쏟아지면서 어느 때까지리이까? 저절로 나온다. 더 기다리라는 신호만 감지한다. 그러나 응답이 계속 지체되면 괴롭기는 하다.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면서 때를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그 때가 언제입니까? 라고 물으면 나도 모른다. 아버지만 아신다고 한다. 갑갑하기만 하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적절한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기 위함이다. 그래서 결론은 쉬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 바를 모른 채 짐을 쌓다. 목적지도 정해주지 않고 보따리를 싸는 것은 큰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작한 일은 자신이 해결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면 된다. 왜냐면 하나님이 벌인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간구가 하나님의 뜻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면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욥의 고난을 보시고 마음이 안타까워서 여기서 멈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상황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하나님의 방법도 방법이지만 꼭 그랬어야 했을까? 적당히 고난을 주시고 회복시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상대가 사탄이기 때문이다. 사탄에게는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욥과 같은 고난을 주시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욥은 극도로 피곤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의 노력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매일 정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울어야 한다. 우는 자식에게 떡 하나가 더 돌아간다는 말도 있다. 전도할 때 적용이 되기도 한다. 복음을 전하다가 낙심되는 사람도 있겠으나 계속 연락하고 찾아가다보면 그 노력을 봤어 그 교회에 한번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생각도 이러지 않을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간구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하나님도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런데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그를 찾기 시작한다. 기다림이 없는 응답은 없다. 모든 응답에는 기다림을 동반한다. 기다리는 자가 응답받는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다림을 배우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자가 내일을 기다린다.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한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응답 한다.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더 집중하라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더 찾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침묵하는 시간은 내게 응답 주시기 위해 그분의 때를 찾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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