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4. 16:29ㆍ자유와 희망
성서에서 본 심판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이후가 좋다.
성서에서 본 심판
어쩌면 하나님은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생각한다. 구약성서에서 나타는 심판은 이렇다. 성경에서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심판을 하였다. 노아의 방주로 심판을 하였다. 그 심판은 오직 노아의 가정만 살리고 모든 인류를 수장시켜 버렸다. 여기에는 심판의 요소가 있다. 왜냐면 의로운 자를 심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심판은 이렇다. 사도행전에는 아버지의 때는 아들도 모른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도적처럼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마 25:1 이하). 그날은 하나님이 천하를 심판하실 것이다(행 17:37: 롬 3:16). 그분이 다시 오실 날을 심판하는 날로 말하고 있다(마10:15: 11:22: 12:36: 벧후3:17: 요일 4:17: 벧후3:17). 요한복음 12:48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심판을 행할 자를 두었는데 아들 예수다. 세상에 있을 동안 아들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심판을 피한다고 누차 말씀하였다. 그러나 복음을 들었지만 부인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 아들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 처음으로 살아나신 하나님의 첫 열매다. 우리도 그분과 같이 마지막 날에 그분과 같이 다시 살아 날것을 보여주셨다. 이처럼 예수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 이다(벧전4:15).
예수님을 심판자로 선택한 것은 아버지다(요 5:22, 27). 마지막 날에 받을 심판장의 모습은 세상의 법정과 같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는다(딤후4:1). 그분은 세상을 심판할 법을 만들었고, 또 법대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받았다. 세상은 3권 분립으로 각자 독립적이지만 하나님의 법은 오직 예수그리스도께로 집중되고 있다. 심판의 핵심 생각은 진리다. 그날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는 백 보좌에 앉아서 인생들을 만날 것이다. 그곳에서는 위증도 거짓말도 통하지 않고 대 낮처럼 자신의 죄가 빛에 의해서 드러날 것이다.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없는 장소가 하나님의 백 보좌 앞이다.
심판을 받을 자가 누구인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 밖의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한 자로 간주한다. 또 불의 한 자와 경건치 않은 자들, 또 살았을 때 복음을 비웃고, 그분을 경배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며 산자들이다. 참고(고전 5:13: 히 10:27: 벧전2:9: 벧후3:7: 유 1:14-15: 계 6:10: 요 12:48) 결국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심판을 하시는데,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들은 그분의 방식대로 나뉘게 된다.
마귀는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힘을 쓰는데, 이들 마귀는 행위보다 믿음을 방해한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기 때문이다. 마귀도 하나님의 책의 내용을 잘 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을 사용하여 믿음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결국 구원에 이른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다. 이것을 구원의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그분의 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 줄로 생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각이다. 구원은 일평생 동안 유지하고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이렇듯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의 출입은 방해하지 않으나 그곳에서 말씀을 받고 회심하는 것은 싫어한다. 사탄 마귀도 말씀을 받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직 말씀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눅8:12: 요 1:12, 3:18).
성경에는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딛3:3과 엡22:3절에서 말씀한다. 이러한 자들은 그분의 때가 이르기 전에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해야 한다. 세월이 악하다는 것은 악한 자에게는 자신의 습관대로 허송세월하며 그 행위에 취해 있어서 회개할 시기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가 깊을수록 은혜도 깊다고 했다. 한때 사도바울은 사탄의 앞잡이로 그리스도인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의 사람인 스테반을 돌로 죽인 현장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감동을 주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존재하는데 선과 악이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에 존재한 선과 악 간에 선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강권적인 은혜와 섭리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로만 구원의 문을 들어간다(딤전 1:16). 바울이 쓴 편지는 모두가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마친다. 그의 편지 마지막에 들어간 내용은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 지어다(딤후4:22).’ 아멘.
심판을 받기 위해서는 선과 악도 줄을 선다. 심판받는 자리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리스도인도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한다(마 12:36; 롬 14:10, 12; 고후 5:10; 히 4:13).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는다. 각 사람의 행위로 심판할 것을 말씀한다. 이젠 우리는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행하고 기도하는 것이다(약 2:12).
심판은 왜 필요한가? 세상에서 온갖 수난과 핍박을 받으며 믿음 지키며 산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과 똑같이 대접한다면 형편상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내 이름으로 핍박받은 사람은 그의 나라에서는 존귀를 받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24:4에서 철저히 보상을 받게 된다. 심판은 그분의 때에 올 것이다. 또 필요하다. 또한 살아 있을 때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살 때 더 유익이 있다(딤후3:16). 세상살이 힘이 들어도 그 세월은 짧다. 조금 있으면 만날 예수님을 바라보며 참고 견디고, 조금 양보하며 살 때가 더 행복하다.
참고
앨런 p. 스탠리, 『최후 심판에서 행위의 역할 논쟁』 새 물결플러스, p13-p23
'자유와 희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의 기도 순서 (0) | 2020.04.26 |
---|---|
나는 빼앗기고도 마음이 편한 사람인가? (0) | 2019.12.26 |
기다림 (0) | 2019.12.22 |
내가 희망이다 (0) | 2019.12.20 |
물건의 영향에서 벗어나라 (0) | 2019.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