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하나님의 이름

2019. 11. 20. 18:09자유와 희망

거룩한 이름 하나님

세상에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명찰을 달자

 

성경을 펴면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을 만난다.

〈여호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야웨〉 변함없고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
〈야〉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
〈퀴리오스〉 스스로 존재하시는 만물의 주되신 하나님
〈데오스〉 영원한 신성을 지니셨고, 모든 피조물에게 빛과 생명을 주시며, 만물을 질서 있게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이외에도 하나님의 이름은 상황과 정황에 따라 불리기도 하였다. ‘아도나이‘(단9:17)라는 표현하는 데 <주>라는 뜻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없어서 대신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아도나이>라고 호칭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필수로 따라 붙는 이름이 있는데, <엘>이다. <임-마누-엘>이 그렇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된다. <엘-깁보르>역시 엘은 하나님을 표현하고 뒤에 붙는 이름은 상황과 정황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엘-샤다이>란 이름도 성경에 많이 나타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된다. <엘로-힘>의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서 온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소개한다. 그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 아닌 세분의 복수의 하나님을 뜻한다. 천지창조는 한 분 하나님이 아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이 연합하여 세상을 지으셨다. 이렇듯 온 우주를 만들 때는 잘 지어야기 때문에 세분 하나님이 모여서 토론을 했을 것이다.

욥은 그의 책 35:10-11에서 <엘-로이-고사이>로 불렀는데, 엘은 하나님이 되고 ‘로이’는 머리가 되시는 분으로 기록했다. “이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고사이’는 복수명사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엘-욘>도 있다. 다니엘서에서 언급하고 있다(4:17). 즉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된다.

또 <아바>가 알레프와 베이트가 조합하여 만든 철자로 즉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다’가 된다. 철자 알레프는 황소가 되고 베이트는 집으로 황소가 집에 있다는 식일 것인데, 알레프는 히브리어의 첫 글자로 처음이 되고, 두 번째 철자인 베이트는 집으로 처음 되신 분이 집에 거한다로 생각해볼 수 있다. 비슷한 단어로는 <벧-엘>인데, '하나님의 집'이 된다. 이 단어를 연상하면 야곱이 돌에 머리를 베고 잠자다가 천국의 계단을 꿈꾸었다고 해서 <벧-엘>이라고 불렀다(창세기28).

하나님의 고유한 사역과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데,

<엘> 강하신 하나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아도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엘-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아바>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이다. 거룩 아닌 것이 없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레11:45). 이 말씀은 거룩한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나 역시 거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 또한 그렇다. 나를 거룩한 자녀로 삼기 위해서다. 이렇듯 그분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속성에 맞추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답게 거룩한 백성이 돼야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곳이 거룩한 장소가 된다. 지상의 교회는 천상의 교회와 같지 않아서 깨지고 으스러진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이 걸린 장소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그 장소라면 믿음 안에 예수님의 명패가 있는 장소가 된다. 그 장소가 직장이 될 수 있고, 길을 걸을 때도 될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면 내가 가는 곳이 그분의 거룩한 장소가 된다. 하나님은 어디를 가든지 나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이 큰 자는 예수님의 명패의 수가 어딜 가나 많이 나타날 것이다.

세상인 광야는 기한이 있다. 그곳은 그분이 부르실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을 반복한다. 어쩌면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분의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그분을 뵈올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은혜의 주님이 되신다. 그분은 세상에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라는 이름표를 차고 그분의 삶을 살기위에 몸부림을 친 흔적을 볼 것이다. 그때 그분은 두 팔을 벌려 나를 위로할 것이다. 누구야(이름???) 세상에서 내 이름표를 달고 잘 살다 왔다. 참 고맙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표를 다는 일은 큰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하나님의 명찰을 달기보다 세상에서도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라는 이름표 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시편91:14-5).”

 

참고

루이스 베일리/조계광, 안보현,『청교도에게 배우는 경건』, 생명의 말씀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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