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거룩하라

2019. 11. 23. 12:43자유와 희망

너희도 거룩 하라(11:44-45).

거룩함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

 

 

본문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음식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체를 만들 때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따로 창조하였는데,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과 세상의 여자로 나뉠 것이다. 반면교사로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만든 이유는 부정한 동물을 통해서 정한 동물이 가르침을 받기 위함일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부정한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뚜렷이 나타내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사람이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유는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과 구별을 품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가운데서 구별하시는 하나님이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 됨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법을 지키고 준행하길 바란다. 부탁이 아닌 명령이다.

성경에 기록된 부정한 음식을 먹어도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법대로 하면 자주 즐겨먹는 삼겹살도 먹어서는 안 된다. 또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먹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율법에서 금지하는 음식을 더 즐긴다. 사실 그런 율법에서 금지하는 음식이 더 입을 즐겁게 한다. 지금은 음식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 시대다. 모든 음식 섭취가 자유롭다. 자신이 먹어서 소화할만하면 어떤 것도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음식을 구별하여서 먹기를 법으로 정했다. 너희는 거룩한 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해서도 거룩함으로 나갈 수 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말씀하는 책이다.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는 것이다. 자녀 된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 그리스도인은 시내 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구별시킨 것은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삼기 위한 그분의 작정이다. 그분의 계획은 차질이 없다. 반드시 목적을 완료시키신다.

나의 최초의 공동체는 가족이다. 집집마다 그 집만에 독특한 문화와 향기가 있다. 또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을 벽에 걸어놓고 암묵적으로 훈계한다. 드라마 전원 일기에서 김 회장 댁에 입양된 금동은 미니 카세트를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부모에게 사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카세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김 회장은 금동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금동이가 입양된 아들로서가 아닌 친 아들로 기르고 싶다고 했다. 또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면 우리 집 방식대로 키울 것이라 말하고, 또 그렇게 살 것을 말하였다. 김 회장 말의 의미는 입양한 아들이 아닌 자신이 낳은 우리 집 아들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금동이가 입양된 아들이라서 친 아들보다 더 친절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는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친 아들은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고 집을 떠나지 않는다. 징계가 없으면 그 자체로 사생아란 뜻이다. 만약 아버지의 야단을 맞았다고 집을 나간다면 나는 입양한 자녀란 뜻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당시에는 슬퍼보여도 지나고 보면 나를 친 아들로 삼았다고 깨닫는다. 그분은 사랑할수록 더 징계하고 회초리를 더 든다. 내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속한 집에서는 아버지의 법도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법도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 가면 회사의 법을 따라야 하고, 학교에 가면 학교의 법을 따라야 한다. 교회가면 교회의 법을 따라야 한다. 교회의 법은 성경이다. 어떤 교회의 정관을 보면 말씀의 기준이 아닌 세상의 기준이 많이 눈에 띈다. 최상위의 법은 성경이다. 그런데 사람의 우두머리가 정해놓은 법이 더 눈에 띈다. 나름대로 성경을 보며 질서를 잡긴 했으나 비 성경적인 내용도 발견한다. 성경의 흐름이 끊어진 교회법이 어지럽다.

하나님이 종 된 이스라엘을 꺼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면서, 자기 백성을 삼기 위해서다백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의 법이 필요하다. 법이 생기는 것은 사람의 수가 많아져서 질서를 잡기 위해서다. 법이 없다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힘이 센 사람이 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무렇게 법을 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다. 약속은 소중한 사람과 맺는다. 하나님은 법 있는 내 국민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 것을 명령했다. 거룩한 삶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신호가 된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 된 히브리인들을 탈출 시킨 것은 너희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다. 그분의 법은 거룩함에서 나온다. 흠 잡을 곳이 없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자녀 또한 아버지처럼 거룩한 자녀가 돼야 되기 때문이다. 자녀가 잘못 살면 아버지가 대신 자녀의 허물을 감당한다. 옛 어른들은 무심중에 누구 집 아들이라고 할 때가 많다. 성경에서도 그렇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빛된 삶을 살지 못하면 자신만 욕을 듣는 것이 아닌 아버지의 수치가 된다. 그래서 아버지와 자녀는 한 몸 공동체가 된다. 아버지가 거룩이면 자녀 또한 거룩하도록 힘써 행해야 한다. 자식이 세상에서 칭찬을 받으면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더 힘이 생긴다.

히브리어 '코데쉬'는 분리됨을 말하는 거룩함이다. 연관된 단어로는 -크다쉬는 거룩한 장소로부터가 되고, 카도쉬는 형용사로 거룩한, 신성한 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을 떠나 가데스 바네아에서 머물 때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명씩을 뽑아 열두 정탐꾼 만들고 가나안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곳에서 법 없는 사람보다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높여준 지위를 자녀들이 낮아지게 하였다. 메뚜기 발언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족히 한 달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거리를 38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했다. 가데스카데쉬로 거룩함이다. 이들 열 두 정탐꾼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땅에서 자신의 모습보고 작고 부끄럽게 생각을 하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실수는 지금 여기서도 발생하고 있다. 기껏 예배하고 기도하고 나왔더니 기도하면서 얻은 힘은 사라지고 세상의 장대한 기골만 본다. 그리고 초라한 나만 데리고 다닌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가 된다. 나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리고 그 거룩함으로 세상에서 구별시켰더니 초라한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습이 불신앙의 표본이다.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블레셋 거인과 전쟁을 할 때 그는 당당했다. 왜냐면 내 앞에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 작고 왜소한 다윗은 장대한 블레셋 장수를 보면서 올테면 와라너는 칼로 나에게 대항하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나간다. 다윗은 하나님이 높여준 자녀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그는 이럴수록 더 힘을 내서 그분의 자녀로 살았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될 때 나타나는 담대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구별된 그분의 백성이 되길 원한다. 또한 거룩함은 구별하고 분리 될 때 드러난다. 죄에서 분리되고, 세상과 분리되어 순금이 되길 바란다. 순금은 불속에서 연단된다. 많은 시험이 올 때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다. 거룩한 모습은 쉽게 습득할 수 없다. 그럼에도 거룩하길 원하며 살아야 한다. 거룩하게 살면 좋아지는 것들이 있는데, 어떤 자리에 가서도 두려움을 느낄 수 없다. 반드시 상황과 현실을 이긴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복종시키고 그 두려움이 거룩해진 나에게 복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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