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0. 17:16ㆍ자유와 희망
성경의 뿌리는 원어
가장 오류가 없는 책은 원어
성경을 보는 근거는 다양하지만 한가지만은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은 원문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은 여러 책을 보고 옮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원 의미를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은 어떤 버전의 책을 보았는가 에서도 해석의 방식이 그 뉘앙스가 달라진다. 또 교회에서 듣는 설교에서도 전하는 사람마다 조금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성경의 중심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교단에서 그 기준을 정한 결과에 있다. 만약에 각 사람이 성경을 보고 성경의 교리를 정하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기준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 신학교를 마친 사람이 성경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곳은 성경의 기준을 획일화하는 공장과 같은 곳이란 점이다. 그 곳에 가기 전에 칼뱅의 길을 갈 것인지, 루터의 길을 갈지, 웨슬리의 길을 따를지 선택하는 것이다.
성경은 원문에서 근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활자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전달 받은 메시지와는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먼저는 세월이 많이 흐른 결과가 있겠고, 말씀이 입으로 전달된 세월을 거치면서 다른 양상으로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염두해 볼 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성경의 원문도 구전시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조금이라도 성경의 원뜻에 가깝게 볼 수 있다면 원문의 성경을 통한 근거에 있다.
설교자가 정직하게 성경본문을 통하여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직한 성경연구라면 원어를 찾아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는 시간을 많이 필요하고, 또 많은 연구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쩌면 인내심이 필요한 계속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방편으로 누군가 연구한 책을 보면서 대리 경험하는 것이다. 필자의 입장은 성경의 본문의 해석은 원문에 근거하여 자기의 생각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문을 읽고 정확하게 해석하는 능력은 기본이다. 결론은 공부를 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손을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모세가 만난 하나님의 언어를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한 언어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가 직접 하나님의 말씀 받은 당사자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모세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한 것이다.
원어로 성경을 볼 때 좋은 점은 수도 없이 많다.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성경을 원어로 보았을 때 입체적인 영화를 본 것이 된다. 원어는 그 시대에 통용한 하나님의 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원어로 성경을 본다면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많은 질문이 일어날 것이며, 또 당시에 사용한 어휘를 볼 수 있다. 시대마다 유행어가 있는데, 당시의 유행한 언어도 가늠된다. 성경을 진심으로 알기를 원한다면 귀찮아도 원어에 접속하는 일이 필요하다. 처음은 어렵지만 조금씩 접촉하면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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